성범죄 피해자 진술은 정말 절대적일까? 2020-11-02 14:52:25

2018년 초, 한 의뢰인이 다급하게 전화를 걸어와 전화상담을 생략한 채 즉시 방문상담 일정을 잡고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사무실로 찾아왔습니다. 내용을 들어보니 서울 시내 호텔에서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간음을 시도한 혐의로 강간죄로 고소당한 상태였고, 의뢰인은 계속해서 식은땀을 흘리고 손을 떨며 매우 당황하는 것이 눈에 보였습니다.

본 건은 3년 이상의 징역형이 선고될 수 있는 중한 죄이고, 형사 기소될 경우 성범죄자로 신상정보 등록 및 신상정보공개고 크지 명령까지 부과될 수 있는 사안이었습니다. 그리고 의뢰인은 교직에 종사하고 있는 교사로서 이 사건으로 유죄판결을 받는 경우 직장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의뢰인은 피해자가 일순간 갑작스럽게 태도가 바뀌고 고통스러워하는 듯 보여 자신이 정말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인가도 생각해보았지만 결국 '아무리 생각해도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간음을 시도하지 않았다'라고 털어놨습니다. 사실 억울함을 호소하는 강제추행 혐의자들은 많이 봐왔으나, 강간죄의 경우 의뢰인의 경우처럼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경우는 비교적 적은 것이 사실입니다. 우선 주고받은 카톡 내용과 사건 직후 피해자가 보였던 행동들을 살펴보니, 내심 '억울할만하다'라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었죠. 결과적으로 피해자의 태도가 갑작스럽게 싸늘해진 것은 의뢰인이 피해자와의 교제를 '확실하게 거부'한 이후였습니다.

자세하게 모든 내용을 말씀드릴 수는 없겠으나 대표적으로 기억에 남는 몇 내용을 말씀드리면 '오빠 또 술 한 잔 사주시면 안 돼요?' , '**호텔 전망이 좋다던데 2차는 거기 서?' 등의 내용으로 피해자가 먼저 만남을 원하는 듯한 카톡 메시지가 다수 있었습니다. 처음 의뢰인이 찾아왔을 때는 '연애의 목적'이란 영화가 떠올랐으나 제 착각이었습니다.

우선 멘틀이 크게 흔들리던 의뢰인과 충분한 상담으로 현재 상황과 앞으로 진행과정에 대해 설명했는데, 오랜 기간 상담을 나누다 보니 고소장에 기재된 내용과는 달리 삽입을 시도하였으나 삽입이 전혀 없었다는 점을 알게 된 바, 우선 강간 미수죄로 죄명 변경을 요청했습니다. 또한 함께 술을 마시던 곳에서 여성이 먼저 스킨십을 시도한 장면과 30페이지에 이르는 서로가 주고받은 카카오톡 내용, 사건 직후 피해자가 보였던 행동들을 증언해줄 직장동료에게 진술을 받는 등 충분한 증거자료를 준비했습니다.

이에 검찰은 제출한 증거자료를 검토 후 의뢰인과 고소인의 진술을 면밀히 살펴본 뒤 피해자 진술에 신빙성이 부족하다고 하여 무혐의 처분을 했습니다.

사건 직후 약 5개월간 피해자의 협박과 경찰, 검찰 조사에 불면증에 시달리던 의뢰인은 무혐의 처분 후 무고죄 맞고소까지 생각했지만 결국 모두 잊고 일에 집중하고 싶다며 사건을 종결짓기로 했습니다.

모든 성범죄에 피해자의 진술이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일전에 본 블로그에서 포스팅한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글을 기억하시나요? 해당 글을 보고 본 포스팅을 읽으면 본 포스팅의 목적을 세심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hanmaum-/221794510494

성인지 감수성과 성범죄 판결 동향

강간죄 혐의가 억울합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여자 후배와 작년 말부터 연락과 만남이 잦아졌고 급속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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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전반에 걸쳐 피해자의 진술에 무게를 두고 사건을 수사하는 것은 맞습니다만, 여러 증거자료가 있는 경우는 그렇지 않습니다. 피해자의 진술에 반박할 증거자료가 하나, 둘 제출될 경우 피해자는 진술을 번복하게 되고 진술의 신빙성은 점차 떨어지게 되죠. 진술이 번복되고 증거자료가 없다시피 한 경우 재판부는 '진술만 가지고 단죄하기 어렵다'라는 내용으로 무죄를 선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체감상 2018년 말을 기점으로 성인지 감수성이 구체화되며 재판이 뒤집히는 경우가 있어온 것이 사실입니다. 번복된 진술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한 1심과 달리 항소심에서 유죄로 판단하고 실형을 내리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다만 이처럼 피해자의 진술이 번복되었더라도 유죄를 선고하는 경우는 대부분 반박할 증거자료가 전혀 없는 경우로 보면 되겠습니다.

판사들은 ‘피해자의 전후 행동’을 문제 삼습니다. ‘피해자답게 행동했느냐’가 문제가 되는 것인데 피해자가 남긴 문자 메시지·카카오톡 메시지가 결정적인 증거자료로 인정받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연인 사이에서 일어난 성폭력 사건에서 사건 발생 이후 평소대로 하트(♥) 이모티콘을 붙였거나 상대방의 물음에 다정하게 답변한 것, 사건 당일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등의 프로필 사진을 변경한 것, 일기장에 표현한 감정 등이 “도저히 성범죄를 당한 사람의 행동 같지 않다"라는 평가의 근거가 됩니다.

법원은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유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그 진술의 진실성과 정확성에 거의 의심을 품을 만한 여지가 없을 정도로 높은 증명력이 요구되고 피해자가 한 진술 자체의 합리성, 일관성, 객관적 상당성은 물론이고 피해자의 성품 등 인격적 요소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합니다.

생각보다 검찰이나 법원이 비상식적으로 피해자의 진술에 의존해 사건을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터넷을 살펴보면 성인지 감수성을 이유로 남성분들이 필요 이상의 공포를 느끼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변호사도, 검사도, 판사도 모두 고소인, 피고소인과 크게 다르지 않은 관점에서 사건을 지켜보고 판단합니다. 수도권 법원의 한 판사는 “일반 대중의 시각에서 80, 90% 범행을 저질렀다는 의심이 들더라도 피고인이 강력하게 부인하는 이상 판사는 10%의 가능성만으로도 무죄를 선고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본질적으로 형사재판도 소송이기에 원고 측, 즉 검사가 죄를 입증을 못하면 피고에게 유리한 구조라고 '아직까지는' 설명드릴 수 있습니다. 필요 이상으로 큰 공포감에 사로잡혀 '피해자가 무조건 유리해'라는 생각으로 죄를 인정하고 합의부터 진행하려는 경우가 많고, 또 이를 처음부터 의뢰인에게 권유하는 무책임한 '공장식 성범죄 로펌'도 실제 존재합니다.

진심으로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억울하다는 생각이 있다면, 적극적이고 능력 있는 변호사를 만나 혐의를 벗어야 할 것이 당연하다는 점,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법무법인 오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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