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지 감수성과 성범죄 판결 동향 2020-11-02 14:51:59

강간죄 혐의가 억울합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여자 후배와 작년 말부터 연락과 만남이 잦아졌고 급속도로 서로 호감을 느껴 연애를 시작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서로 술에 취한 상태는 맞았지만 인사불성은 아니었고 충분한 합의하에 관계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 갑자기 강간으로 고소했다며 연락이 왔고, 저는 아직까지도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일방적인 관계였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관계를 맺은 이후로도 연락은 계속했었고요. 함께 손을 잡고 숙박업소에 들어가는 CCTV나 주고받은 문자의 내용이 유리한 자료로 작용할 수 있을까요? 또한 성인지 감수성으로 요즘 재판에 가면 대부분 실형을 받는다는데 성인지 감수성은 무엇인가요?

1. 강간했다는 그날 저와 산책하며 피해자가 직접 제 폰으로 저와 함께 셀카를 찍은 것이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을까요?

2. 상대방이 주장하는 강간이 있었던 날 이후 전화 통화 내용에서 일상적인 대화를 하고 저랑 있었을 때가 좋았다고 집에 오니 우울하다는 내용을 얘기하였던 것도 진술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을까요?

3. 잠자리를 가졌던 날 이후 먼저 연락 와서 심심하다고 전화하고 한 거에 대해도 녹음한 내용을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을까요?

 

유리한 증거자료가 될 수 있지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말씀하신 부분들은 다소 유리한 정황증거가 될 수 있지만, 피해자의 일관된 범죄 피해 진술이 있다면 크게 유리하게 작용하기는 어렵습니다. 최근 법원에서는 성인지 감수성을 중시하는 판결을 선고하는 경향이 있어, 수사기관과 법원이 피해자의 진술에 더욱 무게를 두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당시 강간이 이루어지지 않은 구체적인 정황에 대하여 상대방 여성보다 구체적이고 일관된 진술을 하고 이와 함께 성관계 전후의 사정에 대하여 기재해주신 내용을 토대로 적극적으로 무혐의 주장을 한다면 불기소처분이 가능하다고도 보입니다만 이 과정은 매우 힘겹고 불리한 싸움이라는 점을 알아두셔야 합니다.

성범죄는 피해 여성의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성이 있어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피해 여성의 진술을 우위에 두고 재판부의 판단이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여성이 강간을 당했다고 말하는 당시 정황을 구체적으로 복기하시고 사건 전후의 정황에 대하여도 변호사와 충분한 상담을 진행하신 후 말씀하신 내용들의 증거자료를 최대한 확보한 뒤 변호사와 함께 수사기관에 동행하시어 조사를 받으시어 불기소처분 등의 최선의 결과를 받을 수 있도록 진행하실 것을 권해드립니다.

성인지 감수성이란?

성인지 감수성(性認知感受性) 또는 성인지성은 형사, 성범죄 사건에 대해 심리할 때 "여성이 사회적 약자로서 가지는 불리함을 보완해야 한다."라는 취지로 성폭행, 성희롱 등 젠더 관련 사건에서의 여성 측의 진술 및 증언, 증거 효력의 인정 기준을 적극적으로 완화하는 것으로, 2010년대 이후 대한민국 사법부가 근대 형사소송의 대원칙을 훼손한다는 남성들의 대내외적 비판을 무릅쓰고 유죄 판결에 인용하기 시작한 자유심증주의 논리를 뜻합니다.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내려진 바 없으며, 인용한 출처에 따라 그 설명에 조금씩 차이가 있는 것으로 일반인들이 판단하기에 매우 애매한 기준입니다. 법조계에서는 이에 대해 "일상생활 속에서 젠더에 대한 차별이 있음을 인지하는 것.", "성별의 불균형에 따른 유·불리함을 잡아내는 것" 혹은 "성폭력·성희롱 사건에서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이해해야 함을 뜻하는 것." 등으로 풀이하는데, 여기에 더해 '과연 재판의 어느 범위까지 성인지 감수성이 적용되어야 하는가?', 또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은 유죄를 선고할 만한 합리적 의심을 없애기에 충분한가?'와 같은 논의는 아직까지 충분히 이루어진 바가 없기 때문에 많은 논란을 안고 있습니다.

본래 영어 단어 'gender sensitivity'는 한국에서 '젠더 감수성', '성별 감수성' 등으로 번역되었으나, 사법부에서 판례 근거로 삼는 '성인지 감수성'과 같은 것인지는 확인하기가 어렵지만, 성인지 감수성은 사법부에서 성범죄 관련 판결의 근거로 채택하기 시작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2012년 기사에 올라온 판사들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미 예전부터 성범죄는 유죄추정의 성격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본 문서에 하술된 판례들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최근에는 성인지 감수성이 재판에 언급되기 이전에 무죄가 내려졌던 상황들도 2심에서 유죄가 내려지는 경우가 나온 것을 보면 그러한 경향이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2018년 4월부터 2019년 4월 1년간 성인지 감수성이 적용된 판결은 무려 57개 중에 56개가 유죄가 선고되며 이 개념에 대한 논란은 계속해서 커지고 있습니다. 성범죄를 제외한 다른 어떠한 형사소송에서도 이 정도로 높게 유죄율을 내릴 수 있는 단일 논리는 없습니다.

2018년 5월부터 9월까지 5개월 동안 성인지 감수성을 판단 기준으로 적용한 판결 10개가 선고되었는데, 지난해 10월 대법원이 이른바 ‘논산 성폭행 피해 부부 동반자살 사건’을 심리하며 “피해자가 사력을 다해 반항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강간이 아니라고 볼 수 없다"라며 성인지 감수성을 재차 언급하자 지난해 11월부터 현재까지 45건의 하급심 판결이 쏟아졌습니다. 수행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가 2심에서 실형으로 뒤집힌 안희정 전 충남지사 사건도 그중 하나로 예전 같았으면 무죄를 인정받았을 사건들이 최근 유죄, 그것도 실형으로 선고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졌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때문에 판사 재량도 커져 어느 정도의 감수성과 예민함을 지닌 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판단 기준이 달라질 수 있어 ‘복불복’인 상황이 만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온라인에선 성범죄 재판에서 별다른 증거 없이 피해자 진술만으로 무조건 피고인에게 유죄가 선고될 수 있다며 ‘킹(king)인지 갓(god) 수성’이란 조롱이 유행 중이고 ‘무죄 추정의 원칙’ 및 ‘증거재판주의’와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확실한 증거자료와 진술로 변호해줄 변호인을 선임하지 않고서는 의뢰인의 상황은 아무리 구체적이고 일관된 진술을 하더라도 '실형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다소 이해가 어려울 수 있지만, 증거자료가 부족하다면 애초에 반성하는 자세로 피해자와 적극 합의에 임하며 소송을 진행하는 것이 실형을 면하는 길 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고 생각되어 무죄를 주장하려 한다면 함께 싸워줄 형사 전문 변호사를 선임하시어 무죄임을 뒷받침해줄 자료를 함께 적극 확보하고 진술하여 억울한 혐의를 벗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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